원글2026.09.04
박쥐의 수명을 결정지은 유전자
버몬트대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진이 Myotis 속 박쥐 여덟 종의 유전체를 해독해 8월 26일 네이처에 발표했습니다. 같은 속 안에서 수명이 서른 해와 세 해로 갈리는데, 그 차이와 맞물린 유전자의 상당수가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유전자였습니다.
버몬트대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진은 Myotis 속 박쥐 여덟 종의 거의 완전한 유전체를 처음으로 조립해 8월 26일 네이처에 실었습니다(지난 자료·원공개 08/26). Myotis는 흔히 보는 작은 박쥐들이 속한 무리입니다. 같은 속 안에서도 어떤 종은 서른 해 넘게 살고 어떤 종은 세 해를 살다 죽습니다. 몸 크기와 서식 환경이 비슷한데 수명만 크게 벌어지기 때문에 비교 대상으로 적합합니다.
시료를 얻는 방식도 기존 연구와 달랐습니다. 연구진은 박쥐를 죽여 장기를 떼는 대신 날개막에서 작은 원형 조각을 떼어 냈습니다. 귀를 뚫는 정도의 크기여서 박쥐는 채취 뒤 그대로 날아갑니다. 연구진은 이 조각으로 세포를 배양해 유전체를 읽었습니다.
분석은 두 갈래로 이뤄졌습니다. 하나는 어떤 유전자가 세대를 거치며 선택되었는지를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유전자의 사본 수가 늘거나 줄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는 코로나바이러스나 독감처럼 RNA 바이러스와 맞서는 단백질 쪽에 선택의 흔적이 몰려 있습니다. 박쥐에서는 B형 간염이나 헤르페스 같은 DNA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단백질 쪽이 두드러졌습니다. 사본 수에서는 대부분의 포유류가 하나만 가진 PKR 유전자를 일부 Myotis 종이 두 개에서 세 개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PKR 유전자가 하는 일
PKR은 세포 안에서 이중가닥 RNA를 만나면 활성화되는 효소입니다. 이중가닥 RNA는 정상적인 세포에서는 잘 생기지 않고 바이러스가 자기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활성화된 PKR은 그 세포의 단백질 합성을 통째로 멈춰 세웁니다.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바이러스도 조립되지 못하지만, 숙주 세포 역시 살아남지 못합니다. 감염을 차단하는 장치인 동시에 세포를 죽이는 스위치로 작동합니다.
암과의 연결 고리는 여기서 나옵니다. 암은 제거되어야 할 세포가 살아남아 증식하는 병이고, 세포를 멈춰 세우는 스위치가 촘촘할수록 그 과정이 시작되기 어렵습니다. 바이러스에 대응하려고 늘어난 사본이 암을 억제하는 데도 쓰인다는 설명입니다. 한 유전자가 여러 형질에 함께 관여하는 이런 현상을 다면발현이라고 부릅니다.
세포 실험 결과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가장 오래 사는 갈색작은박쥐의 세포는 손상이 심하게 가해졌을 때 복구를 시도하기보다 그 세포를 죽이는 쪽으로 뚜렷하게 기울었습니다. 공동 제1저자인 엘리스 라우터버는 병원체 적응과 장수, 암 저항이 근본적으로 이어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코끼리에서 보고된 비슷한 사례
종양 억제 유전자의 사본 수가 늘어난 것과 장수가 함께 나타난 사례는 코끼리에서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코끼리는 대부분의 동물이 하나만 가진 TP53을 스무 개 가까이 가지고 있고, 이것이 몸집이 크고 오래 사는데도 암 발생이 드문 이유로 꼽힙니다. 다만 두 동물이 마주한 조건은 다릅니다. 코끼리 쪽은 몸이 커서 세포 수가 많고 그만큼 이상이 생길 확률이 높다는 문제였고, 박쥐 쪽은 바이러스에 반복해 노출된다는 문제였습니다. 서로 다른 조건에서 비슷한 형태의 해법이 나온 셈입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
유전체 비교로 확인한 것은 상관관계입니다. 사본이 많아서 오래 사는 것인지 오래 사는 계통에서 사본이 남은 것인지는 이 방법만으로 가려지지 않습니다. 세포 수준의 실험은 이뤄졌지만 개체의 수명을 실제로 늘려 본 실험은 아닙니다. 저자들도 박쥐의 면역 적응을 사람의 치료에 바로 옮기기에는 이르다고 밝혔습니다. 박쥐의 장수에는 비행과 겨울잠처럼 유전자 밖의 요인도 함께 얽혀 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노화 연구의 표적이 놓이는 위치입니다. 손상을 복구하는 장치에서 손상된 세포를 걸러 내는 장치 쪽으로 관심이 옮겨 가고, 그 장치가 면역계의 부품이라는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본 수라는 형질은 지금의 신약 개발 방식과 거리가 있습니다. 약은 대체로 하나의 표적을 켜거나 끄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유전자를 한 벌 더 넣는 일은 성격이 다른 기술이어서 사람에게 적용하기까지 갈 길이 멉니다.
시료를 얻는 방법도 함께 볼 만합니다. 동물을 죽이지 않고 조직을 얻어 세포를 배양할 수 있다면 오래 사는 야생동물의 유전체를 비교할 표본이 크게 늘어납니다. 이 분야에서 자료가 부족했던 이유의 상당 부분은 자료를 얻는 방법 자체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