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2026.08.24
운동을 흉내내는 알약?
미국 엔베다바이오사이언스가 격한 운동 중에 몸에서 늘어나는 대사물질을 흉내 낸 경구용 후보물질 ENV-308의 1상 결과를 8월 18일 공개했습니다. 건강한 성인 88명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내약성을 확인했다는 내용입니다.
1상 결과
18일 미국 볼더의 엔베다바이오사이언스는 경구용 후보물질 ENV-308의 1상 결과를 공개했습니다(지난 자료·원공개 8/18). 건강한 성인 88명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내약성, 체내 약물 농도 변화를 측정했습니다. 시험한 모든 용량에서 중대한 이상반응과 중도 탈락, 투약 중단이 없었고, GLP-1 계열 약에서 흔한 위장관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회사는 밝혔습니다. 혈중 렙틴이 줄었으며, 시작 시점에 렙틴이 높았던 참가자에서 감소폭이 컸습니다. 동물 실험에서는 체중이 빠지는 동안 제지방이 유지됐고, 투약을 끊은 뒤 체중이 되돌아오는 것도 억제됐습니다.
락페라는 분자
ENV-308이 흉내 낸 분자는 락페입니다. 락토일페닐알라닌의 줄임말로, 격한 운동을 할 때와 식사 뒤에 몸이 내놓습니다. 근육이 힘을 쓰면서 나온 젖산이 아미노산인 페닐알라닌과 결합해 만들어지고, 그 반응을 맡는 것은 CNDP2라는 효소입니다. 만들어진 락페는 혈류를 타고 뇌로 가서 시상하부와 뇌줄기의 신경세포를 자극하고 먹는 양을 줄입니다. 2022년 스탠퍼드의 조너선 롱과 베일러의 용 쉬 연구진이 네이처에 발표한 내용입니다.
락페 자체는 그대로 약이 되지 않습니다. 몸에서 너무 빨리 사라지고, 쥐에게 입으로 먹였을 때는 항비만 효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배 안에 주사했을 때만 먹는 양과 체중 증가가 줄었습니다. 필요했던 것은 락페처럼 작동하면서 하루 한 번 먹어도 되는 다른 분자였고, 엔베다는 자연에 존재하는 생리활성 물질을 훑는 자사 인공지능 플랫폼 프리즘으로 이 분자를 찾았다고 밝혔습니다.
렙틴이 줄어든 결과를 두고 회사는 ENV-308을 알약 형태의 렙틴 민감도 개선제로 설명합니다. 렙틴은 지방세포가 내놓는 포만 신호인데, 비만인 사람은 이 신호가 오히려 많은데도 뇌가 잘 반응하지 않는 상태에 있습니다. 적은 신호로도 같은 포만감을 얻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표적
이번 발표에서 비어 있는 부분은 이 약이 몸의 무엇에 붙어 작동하는지입니다. 락페가 결합하는 수용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2022년 논문이 나온 지 4년이 지났지만 표적을 찾는 일은 여전히 이 분야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요즘 신약 개발은 병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먼저 정하고, 그 단백질에 붙는 분자를 찾고, 붙는 세기를 재고, 사람에게 시험하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반면 ENV-308은 격한 운동 뒤에 가장 크게 늘어나는 대사물질을 훑어 락페를 찾아내고 쥐에서 먹는 양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한 쪽이어서, 그 효과가 어떤 경로를 거쳐 나타나는지는 나중 문제로 남았습니다.
표적을 모른다는 점이 임상시험의 결격 사유는 아닙니다. 규제 기관이 묻는 것은 기전보다 안전성과 효과이고, 아세트아미노펜은 진통 기전이 완전히 합의되지 않은 채로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해열진통제입니다. 아스피린도 1899년부터 팔렸지만 사이클로옥시게나제를 억제한다는 기전은 1971년 존 베인이 밝혔습니다. 다만 표적을 모르면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쳤을 때 무엇을 고쳐야 할지 판단할 근거가 얇아집니다. 용량을 올릴지, 다른 환자군을 고를지, 분자를 바꿀지를 정할 때 기댈 것이 관찰 결과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시험의 성격도 함께 봐야 합니다.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안전한지를 확인한 시험이고, 체중은 이번에 측정하려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락페가 맡는 일도 먹는 양을 줄이는 쪽에 한정됩니다. 근육 단백질 합성, 심폐 능력, 인슐린 감수성, 뼈 밀도에는 이 분자가 관여하지 않습니다.
이번 발표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1상 숫자보다 엔베다가 예고한 2상이 무엇을 측정하려 하는지입니다. 2상은 감량보다 체중 유지 쪽을 봅니다. GLP-1 계열 약을 끊은 사람에게서 체중이 되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시험이고, 그렇게 되면 중요한 측정치도 체중에서 제지방으로 옮겨 갑니다. 회사가 함께 공개한 동물 실험에서 체중이 빠지는 동안 제지방이 유지됐다는 대목이 이 방향과 이어집니다. 체중이 빠졌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면 지방은 대체로 돌아오고 근육은 덜 돌아오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 격차가 커지기 때문에 노화 쪽에서는 이 구분이 특히 무겁게 다뤄집니다.
인공지능 신약 개발에서 성과로 꼽혀 온 일은 대개 정해진 표적에 붙는 분자를 설계하는 쪽입니다. 엔베다는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물질들의 지도를 훑어 효과가 나는 것을 골라내는 방향으로 접근했습니다. 표적을 모르는 채로 출발할 수 있다는 점이 이 방식이 속도를 내는 이유이지만, 같은 이유로 2상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쳤을 때 원인을 좁히기가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