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2026.08.23
붙는 것과 듣는 것
앤스로픽이 8월 18일 자사 모델이 표적 단백질에 붙는 신규 결합체를 스스로 설계한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설계 1,320개 가운데 354개가 실제로 결합했고, 검증은 외부 실험 기업 두 곳이 맡았습니다.
이번 작업에는 클로드 오푸스 4.8과 미토스 프리뷰가 투입됐습니다. 두 모델은 표적 선정부터 구조 생성과 서열 설계, 최적화 반복, 전산 선별까지를 사람의 개입 없이 진행했습니다. 표적 15종에 각 30개씩, 모두 1,320개의 설계가 나왔습니다. 연산 자원은 방식에 따라 달랐습니다. 다중표적 방식은 48시간 세션에 H100 최대 1만 2,500시간을 썼고, 단일표적 방식은 24시간 세션에 표적당 2,500시간을 썼습니다.
검증은 어댑티브바이오와 트위스트바이오사이언스가 맡았습니다. 설계 서열을 DNA로 바꿔 무세포 단백질 합성으로 단백질을 만든 뒤, 표면플라스몬공명으로 결합을 재고 표적 농도 5단계에 이중 측정을 붙였습니다. 설계의 95%가 발현됐고, 1,320개 가운데 354개가 표적에 붙었습니다. 표적 15종 가운데 14종에서 결합체가 나왔습니다. 적중률은 방식에 따라 22.6%에서 35.1%였는데, 이 분야의 통상 범위는 10에서 15%입니다. 결합 세기는 15-PGDH에서 33.4나노몰라, RBX1에서 3.9나노몰라였습니다. 어댑티브바이오가 앞서 열었던 공개 경진대회의 최고 기록은 각각 1.7마이크로몰라와 25.7나노몰라였습니다.
자동화된 것은 어느 단계인가
신규 결합체를 설계하는 일 자체는 몇 해 전부터 전용 모형이 해 오던 작업이고, 그 모형 상당수는 공개돼 있습니다. 설계 절차는 대체로 다섯 단계로 나뉩니다. 표적을 고르고 어느 면에 붙일지를 정하는 단계, 뼈대를 생성하는 단계, 그 뼈대에 맞는 서열을 설계하는 단계, 예측 구조와의 일치도로 걸러 내는 단계, 마지막으로 실제로 만들어 재는 단계입니다. 각 단계의 전용 모형은 공개돼 있고 계산 비용도 거의 들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캠페인마다 적중률이 12%와 27%처럼 갈리는 원인은 모형의 성능보다 모형과 모형 사이에서 내리는 작은 판단들에 가깝습니다.
어느 면을 표적으로 잡을지, 설계를 몇 개나 뽑을지, 거르는 기준을 어디에 둘지, 언제 최적화를 멈추고 실제 플레이트로 넘어갈지 같은 것들입니다. 단백질 공학자가 값을 받는 이유가 이 판단에 있고, 논문에는 잘 적히지 않은 채 실험실의 관행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실험에서 모델이 맡은 구간이 여기입니다. 문헌을 읽고 GPU 예산을 써 가며 조건을 바꿔 반복하는 방식으로 그 관행을 탐색으로 대체했습니다.
단일표적 결과가 이 해석과 맞물립니다. 표적 하나에 2,500시간을 쓴 24시간 세션의 적중률이, 열다섯 표적에 1만 2,500시간을 나눠 쓴 48시간 세션보다 높았습니다. 총 연산량보다 한 갈래를 얼마나 깊이 파고들었는지가 결과에 더 크게 작용한 셈입니다.
같은 날 공개된 두 번째 실험도 자동화의 대상이 어디인지를 보여줍니다. 클로드 오푸스 5가 핵자기공명과 액체크로마토그래피 질량분석의 원시 계측 파일을 제조사 소프트웨어 없이 처리해 화합물의 정체와 순도를 판정했습니다. 핵자기공명 분석에 23분, 질량분석에 19분이 걸렸고, 순도는 96.4%로 위탁 실험실이 낸 96.33%와 거의 같았습니다. 바이오텍의 일정이 밀리는 구간에는 설계뿐 아니라 특성 분석 결과를 며칠씩 기다리는 대기열도 들어 있습니다.
계산으로 분자를 설계하려는 시도는 1980년대의 분자 도킹과 구조 기반 설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는 합리적 설계가 무작위 스크리닝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스크리닝은 살아남았고 두 방식은 오래 공존했습니다. 계산이 기대만큼 힘을 쓰지 못한 원인으로는 계산과 실험을 잇는 고리가 없었다는 점이 꼽힙니다. 예측한 분자를 만들어 재는 일이 비싸고 느려서, 틀렸다는 사실을 몇 달 뒤에야 알았습니다. 이번 실험에서 달라진 부분이 그 고리입니다. 무세포 단백질 합성과 로봇 기반 측정이 설계 1,320개를 한 묶음으로 만들어 재는 것을 가능하게 했고, 이번 결과가 앤스로픽과 어댑티브바이오 양쪽의 것으로 발표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합 확인까지가 이번 실험의 범위
표면플라스몬공명은 두 분자가 달라붙는지를 재는 측정입니다. 약이 되려면 그다음에 안정성과 면역 반응, 생산 가능성, 조직 도달, 다른 분자에 붙지 않는 선택성을 차례로 통과해야 합니다. 어댑티브바이오도 이번 작업이 첫걸음이며 결합 기능만 확인했을 뿐 치료 효능이나 개발 가능성은 시험하지 않았다고 명시했습니다. 계산과 실험이 맞물린 지점 역시 결합 측정까지이고, 약효를 재는 단계는 여전히 동물과 사람을 거칩니다. 앞단이 하루로 줄어도 전체 개발 일정은 뒷단의 속도에 맞춰집니다.

실패한 표적도 있습니다. 말토스결합단백질에서는 결합체가 한 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단백질은 분자생물학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도구 가운데 하나로, 수만 편의 논문에 도구로 등장합니다. 왜 이 표적에서만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어댑티브바이오는 별개로 GDF-8 성숙형을 표적 응집 때문에 측정에서 제외했고, 재는 쪽의 한계도 함께 남아 있습니다.
평가 구조도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검증을 맡은 어댑티브바이오는 이번 프로젝트의 참여자이고, 비교 기준으로 쓰인 공개 경진대회 기록도 이 회사가 앞서 운영한 대회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번 결과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병목의 위치가 옮겨간다는 점입니다. 표적에 붙는 분자를 만드는 일이 싸지면 남는 제약은 몸 안의 목적지까지 닿게 하는 전달과 효과를 재는 지표, 그리고 습식 검증 처리량입니다. 한 묶음에 1,320개를 발현시키고 재는 설비와 거기서 나오는 측정 자료의 값이 함께 올라갑니다.
접근 조건도 같이 봐야 합니다. 앤스로픽은 가장 강한 모델에서 단백질 설계 기능을 일반 접근에서 차단해 둔 상태로 이 결과를 냈습니다. 능력을 공개하는 일과 능력에 접근하게 하는 일이 분리돼 있고, 학계 비중이 큰 노화 연구에서는 이 분리가 누가 무엇을 연구할 수 있는지에 직접 작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