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2026.08.29
워시 연준 의장, 금리 예고 중단 선언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8월 28일 잭슨홀 심포지엄에서 취임 후 첫 기조연설을 했습니다. 앞으로 금리 경로와 반응 함수를 제시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물가는 여전히 높고 금융 여건은 긴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진단을 함께 내놓았습니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28일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이 여는 잭슨홀 심포지엄에서 「In Our Time」이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을 했습니다. 의장으로 일한 지 100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연설은 물가 지표에서 시작했습니다. 연준이 보는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의 12개월 상승률은 3.7%, 6개월 상승률은 4.1%입니다. 199개 구성 항목을 하나씩 확인한 결과 지난 12개월 동안 3% 넘게 오른 항목이 54%였습니다. 팬데믹 고점의 약 77%보다는 낮지만 팬데믹 이전 20년의 32%보다는 한참 높은 수준입니다. 워시는 65개월째 이어진 높은 물가의 책임이 중앙은행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활동 지표는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설비와 무형자산 투자는 네 개 분기 기준으로 약 9% 늘어 2021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이고, 올해 늘어난 자본지출의 절반 넘게가 인공지능 관련 건설로 설명된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S&P 500 기업의 이익은 한 해 동안 20% 넘게 늘었고 이익률도 역사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실질 소비지출은 2% 넘게, 민간 국내 최종구매는 올해 3%에 가깝게 늘었습니다. 실업률은 4.1%입니다. 회사채와 레버리지론의 가산금리는 역사적 범위의 아래쪽에 있고, 7월 대출 담당 임원 설문에서 은행들이 밝힌 기업 대출 심사 기준도 느슨한 쪽입니다. 워시는 이런 금융 여건을 긴축적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고 정리했습니다.
시장은 이 연설을 매파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그는 금리를 올리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의 금리 경로를 제시하지 않았고, 지표가 어떻게 나오면 어떻게 하겠다는 반응 함수도 내놓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연설 첫머리에서 자기가 말할 순서를 소개하면서도 이것을 예고로 부르지는 말아 달라고 덧붙였습니다. 연설은 시험비행 조종사 척 예거가 남긴 말,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유가 있거나 결과가 있다는 문장을 인용하며 끝났습니다.
예고를 거두겠다는 이유
중앙은행이 시장에 방향을 전달하는 방법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사전 약속으로, 물가가 어떤 상태이면 금리를 어떻게 하겠다고 미리 밝히는 방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금의 여건이 어떤지만 서술하고 그다음 계산은 듣는 쪽에 맡기는 방식입니다. 워시가 택한 쪽은 후자입니다.
사전 약속에는 구속력이 따라붙습니다. 지키지 못하면 약속을 어겼다는 평가를 받게 되고, 그 평가를 피하려다 잘못된 결정을 밀고 나갈 수 있습니다. 워시가 예고를 거두는 이유로 든 것이 이 대목입니다. 미리 약속해 두면 정작 결정해야 할 시점에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는 것입니다.
여건을 서술하는 데 그치면 구속력은 생기지 않지만 계산의 재료는 남습니다. 물가가 목표의 거의 두 배에 있고 금융 여건은 조이는 상태가 아니라는 두 진술을 나란히 놓으면, 금리를 내릴 여지가 크지 않다는 결론이 따라 나옵니다.
예고를 꺼리는 또 다른 이유는 연설 중반에 나옵니다. 연준은 국채 가격과 달러 가치, 신용 가산금리, 원자재 가격을 보고 경기를 판단하는데, 그 가격들은 시장이 연준의 예고를 읽고 매긴 값이기도 합니다. 워시는 이 구조를 거울의 방이라고 부르면서, 서로가 서로를 참고하면 양쪽 모두 새로운 정보를 놓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예고를 줄이는 목적이 투명성을 낮추는 데 있지는 않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시장 가격을 가능한 한 걸러지지 않은 상태로 받기 위해서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연준이 물가를 잘못 읽었을 때 발생하는 비용을 시장 참가자가 부담하지는 않는다고도 말했습니다. 가장 크게 다치는 쪽은 금융자산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199개 항목을 따로 센 이유
물가 상승률은 평균값이어서 일부 항목이 크게 움직이면 전체 숫자가 흔들립니다. 유가 하나로 오르내리는 지표만 놓고 금리를 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199개 항목을 개별로 집계한 이유입니다.
항목의 절반 넘게가 동시에 3% 넘게 오르고 있다면 몇몇 품목의 사정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워집니다. 평상시 수준이 32%인데 지금이 54%라는 것은 물가 상승이 아직 특정 품목의 문제로 좁혀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6개월 상승률이 12개월 상승률보다 높다는 대목도 같은 취지입니다. 긴 기간의 평균보다 최근 평균이 높으면 물가가 다시 올라가는 국면일 수 있습니다. 이번 여름 지표가 예상보다 좋게 나왔는데도 그가 추세가 개선됐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한 근거가 이 두 가지입니다.
1979년 사례와 다른 점
1979년 10월 6일 토요일 밤 열린 특별 회의에서 연준은 운영 방식을 바꿨습니다. 금리를 목표로 잡는 대신 은행이 쌓아 두는 지급준비금의 양을 관리하겠다고 발표했고, 금리 수준은 시장이 정하도록 두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뒤 연방기금금리는 20%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중앙은행이 금리 경로를 스스로 말하지 않게 만든 제도라는 점에서 이번 연설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워시가 이번 연설에서 여섯 번째 원칙으로 돈이 중요하다며 통화량을 다시 보겠다고 한 대목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차이도 뚜렷합니다. 볼커 때 물가는 두 자릿수였고, 그 대가로 실업률은 몇 해 뒤 10%를 넘었습니다. 경기 위축을 감수하고 물가를 잡겠다는 선택이었습니다. 지금은 물가가 3.7%이고 실업률은 4.1%이며 기업 이익은 20% 넘게 늘고 있습니다. 볼커가 새 규칙을 만들어 공표한 반면, 워시는 규칙을 공표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연설의 근거에는 한계도 있습니다. 65개월과 54%와 4.1%는 모두 워시가 직접 골라 제시한 숫자입니다. 같은 연설에서 그는 중기 기대 인플레이션과 스왑 시장이 보내는 신호가 안정적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예고를 거두면 시장 신호가 실제로 깨끗해지는지도 아직 검증된 바가 없습니다. 예고가 없으면 시장은 연설의 어조에서 방향을 읽으려 하고, 그 경우 해석의 폭은 오히려 넓어집니다.
채권과 대출에 남는 계산
이번 연설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금리 수준보다 가격을 계산하는 부담이 옮겨 간 방향입니다. 미국 국채는 만기가 짧아져 차환이 자주 돌아오고, 그 차환은 금리가 언젠가 내려온다는 전제 위에서 값이 매겨져 왔습니다. 올해 늘어난 자본지출의 절반 넘게가 인공지능 관련 건설이고, 데이터센터를 담보로 빌리는 구조도 같은 전제 위에서 값이 매겨집니다. 연준이 그 전제를 더 이상 제공하지 않겠다고 한 만큼, 계산은 채권과 대출을 사는 쪽이 직접 해야 합니다.
워시가 연설의 앞부분을 인공지능에 할애한 것도 함께 볼 만합니다. 그는 선두 두 연구소의 연 환산 토큰 판매가 1,000억 달러를 넘고 한 해 만에 500% 넘게 늘었다는 보도를 인용하면서, 인공지능이 새로운 생산요소일 수 있고 토큰의 균형 가격이 얼마인지는 아직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과거 모델의 토큰값이 한계비용까지 내려갈지를 묻는 대목은 통화정책 연설보다 산업 분석에 가깝습니다. 금리를 정하는 자리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는 사실은 인공지능 관련 지출이 이미 물가와 투자 판단의 재료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