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2026.10.08
브로드컴, 오픈AI 칩 구매 대출 500억 달러 주선
미국 반도체 회사 브로드컴이 오픈AI와 함께 개발하는 맞춤형 AI 칩의 구매 자금으로 500억 달러가 넘는 대출을 주선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7일 보도했습니다. 칩을 파는 회사가 고객의 구매 자금까지 끌어오는 방식이 6월 앤트로픽 거래에 이어 오픈AI로 넓어지고 있습니다.
아폴로·블랙스톤과 협의, 연내 마무리 목표
WSJ 보도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사모 대출 회사인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블랙스톤과 대출 참여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협상은 초기 단계이고 규모는 바뀔 수 있습니다. 오픈AI는 이 칩 사업을 내부에서 '넥서스'라고 부르며, 1세대 칩은 잘라페뇨, 2세대 칩은 세라노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번 자금은 오픈AI 맞춤형 칩 여러 기가와트 분량을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이르면 올해 말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두 회사는 1년 전 10기가와트 규모의 맞춤형 칩을 함께 개발해 2026년 하반기부터 2029년 말까지 배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다만 이번 대출에서 누가 돈을 빌리는지, 무엇을 담보로 잡는지, 만기가 얼마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같은 보도에는 비슷한 거래가 두 건 더 담겼습니다. 오라클은 아폴로, 골드만삭스와 함께 별도 법인이 칩을 사들이고 오라클이 이를 빌려 쓰는 구조를 협의하고 있습니다. 1기가와트 규모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칩으로, 오라클 장부에 빚을 더 얹지 않으려는 방식입니다. 스페이스X도 엔비디아 칩을 사기 위해 400억 달러 규모의 대출을 협의하고 있습니다.
6월 앤트로픽 거래가 만든 틀
브로드컴은 이미 같은 방식의 거래를 한 차례 마쳤습니다. 6월 9일 아폴로가 주도하고 블랙스톤이 참여한 350억 달러 규모의 1차분이 'AI XPV 플랫폼'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첫 자금은 앤트로픽의 연산 설비 확충에 쓰였습니다. 플랫폼 전체로는 2028년까지 앤트로픽, 오픈AI 등 AI 연구소에 20기가와트 이상의 설비를 공급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구조는 이렇습니다. 특수목적법인이 대주단에게서 돈을 빌려 브로드컴 칩을 사고, 이 칩을 AI 연구소에 빌려줍니다. 연구소가 내는 임대료로 원리금을 갚기 때문에 빚은 연구소 장부에 올라가지 않습니다. 여기에 브로드컴이 칩의 잔존가치를 보증합니다. 연구소가 임대료를 내지 못해 칩을 팔았는데 그 돈이 빚에 못 미치면, 선순위 채권자에게 그 차액을 브로드컴이 메워 주는 약속입니다. 이 보증 덕분에 선순위 채권은 신용도가 높은 브로드컴에 가까운 금리로 팔렸습니다.
WSJ는 이런 구조가 필요한 이유로 AI 연구소의 재무 여력을 들었습니다. 아마존이나 오라클 같은 클라우드 회사는 그동안 쌓아 둔 현금으로 설비를 사 왔지만, 오픈AI와 앤트로픽은 칩을 한꺼번에 살 만한 대차대조표가 없습니다. 두 회사는 클라우드에서 연산 설비를 빌려 쓰는 비용을 줄이려고 설비를 직접 갖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고, 그 돈을 칩을 담보로 빌려 오는 것입니다.
보증이 쌓이는 쪽은 브로드컴
이 구조에서 위험의 상당 부분은 브로드컴이 집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8월 11일 브로드컴 채권 투자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시장 비중'으로 낮췄습니다. 플랫폼이 계획대로 20기가와트까지 커지면 브로드컴이 지는 잔존가치 보증의 최대치가 2029년 중반 3,700억 달러에 이를 수 있고, 고객이 소수 연구소에 몰려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담보가 되는 칩도 아직 검증 단계입니다. 오픈AI의 잘라페뇨는 엔지니어링 샘플이 연구실에서 작업을 돌리는 수준이며, 상용 출하나 비용 절감 효과는 공개된 적이 없습니다. AI 칩은 새 세대가 나올 때마다 기존 칩의 쓸모와 중고 가격이 함께 내려가기 때문에, 몇 년 뒤 칩을 팔아 빚을 갚을 수 있는지가 보증의 실제 크기를 정합니다.
칩 값의 미래가 대출의 기준이 됩니다
이번 보도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AI 칩 대금이 어디서 나오느냐입니다. 칩 회사가 자금 조달을 주선하고 잔존가치를 보증하면 매출은 칩 회사에 잡히고, 위험은 보증 약정의 형태로 칩 회사에 남습니다. 연산 설비를 몇 년 치 미리 확보하고 그 값을 칩을 담보로 치르는 방식은, 결국 몇 년 뒤 칩의 중고 가격이 대출 조건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연내 마무리될 오픈AI 건에서 브로드컴이 보증하는 범위가 얼마로 정해지는지가 이 구조의 무게를 가늠할 첫 숫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