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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2026.09.30

앤트로픽 상장 신고서, 인프라 약정 5,180억 달러

글쓴이오레놀 대덕2026.09.30
서버 랙이 늘어선 데이터센터. 이미지: Carl Lender / Wikimedia Commons (CC BY 2.0)
서버 랙이 늘어선 데이터센터. 이미지: Carl Lender / Wikimedia Commons (CC BY 2.0)

앤트로픽이 상장을 앞두고 작성한 증권신고서에서 앞으로 약 10년 동안 클라우드와 컴퓨팅 인프라에 최소 5,180억 달러를 쓰기로 약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가운데 약 80%는 실제로 쓰든 안 쓰든 지급해야 하는 계약입니다.

신고서에 적힌 매출과 손실

로이터가 입수해 9월 29일 보도한 상장 신고서(S-1)에 따르면 앤트로픽의 2025년 매출은 약 45억 9,000만 달러로 한 해 전의 12배로 늘었습니다. 같은 해 컴퓨팅과 인프라에 쓴 돈은 73억 3,000만 달러로 전년의 세 배였고, 영업손실은 8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순손실은 420억 달러로 잡혔는데, 이 중 약 340억 달러는 전환형 자금 조달의 평가액이 오르면서 생긴 회계상 비용이라 실제로 나간 현금과는 다릅니다.

올해 들어 매출 규모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PYMNTS 보도에 따르면 1분기 매출은 47억 3,000만 달러로 이미 지난해 연간 매출을 넘었고, 2분기에는 115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7월 기준 연환산 매출은 650억 달러입니다. 회사는 2조 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목표로 하며, 상장은 11월 미국 중간선거 이후가 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5월 투자 유치 때 평가액은 9,650억 달러였습니다.

앤트로픽 분기 매출. 자료: 앤트로픽 상장 신고서(PYMNTS·임플리케이터 보도)
앤트로픽 분기 매출. 자료: 앤트로픽 상장 신고서(PYMNTS·임플리케이터 보도)

5,180억 달러의 내역

임플리케이터가 정리한 약정 내역을 보면 가장 큰 항목은 브로드컴 관련 장비 리스로 1,612억 달러이며 대부분 해지할 수 없습니다. 클라우드 쪽으로는 구글 1,111억 달러(2026년 4월~2033년 7월), 아마존 1,100억 달러(2026년 5월~2036년 4월), 마이크로소프트 314억 달러(2026년 11월~2033년 5월)가 잡혀 있습니다. xAI와는 2029년까지 최대 845억 달러 규모의 계약이 있지만 90일 전에 통보하면 대부분 해지할 수 있고, AMD는 200억 달러 이상의 컴퓨팅 용량을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신고서는 이 계약들의 성격을 분명히 적었습니다. 글로브앤드메일이 인용한 문구에 따르면 실제 지출이 약정에 못 미치면 앤트로픽이 구글에 차액을 내야 하고, 아마존과의 계약에도 비슷한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업계에서 테이크 오어 페이(take-or-pay)라고 부르는 방식입니다. 클라우드 회사는 데이터센터와 칩을 먼저 사 두는 대신 고객에게서 최소 구매액을 보장받고, 설비가 놀 때의 손실은 고객이 떠안습니다.

앤트로픽 인프라 약정의 상대별 내역. 자료: 앤트로픽 상장 신고서(로이터·임플리케이터 보도)
앤트로픽 인프라 약정의 상대별 내역. 자료: 앤트로픽 상장 신고서(로이터·임플리케이터 보도)

고객 집중과 공개되지 않은 숫자들

약정 규모를 2025년 매출과 비교하면 매출 1달러당 약 113달러의 인프라 지출을 미리 약속한 셈입니다. 올해 1분기에는 매출 1달러를 올리는 데 컴퓨팅 비용으로 71센트를 썼습니다. 반면 매출 쪽은 오래 묶여 있지 않습니다. 신고서는 2025년 매출의 4분의 1가량이 이름을 밝히지 않은 고객 두 곳에서 나왔고, 대형 고객 상당수가 장기 계약을 맺지 않아 언제든 지출을 줄일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신고서에 빠진 숫자도 많습니다. 매출총이익률, 고객별 추론 비용, 모델 학습 비용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리서치 분석가 로스 헨드릭스는 X에서 이 약정을 채우려면 채권시장에서 4,000억 달러를 조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261쪽 가운데 약 80쪽을 차지하는 위험 요인 항목에는 모델이 종료를 거부하는 자기 보존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경고도 들어 있습니다.

미국 로런스버클리 국립연구소 슈퍼컴퓨팅센터(NERSC)에서 서버 랙을 점검하는 기술자. 이미지: Derrick Coetzee / Wikimedia Commons (CC0)
미국 로런스버클리 국립연구소 슈퍼컴퓨팅센터(NERSC)에서 서버 랙을 점검하는 기술자. 이미지: Derrick Coetzee / Wikimedia Commons (CC0)

관점

이번 신고서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AI 회사가 컴퓨팅을 몇 년 치 미리 사는 거래의 규모와 조건이 상장 공시 문서에 구체적인 숫자로 나왔다는 점입니다. 5,180억 달러의 80%가 사용량과 무관하게 고정돼 있다는 것은 앞으로 컴퓨팅 가격이 내려가더라도 앤트로픽은 약정한 값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고, 반대로 구글과 아마존, 브로드컴은 10년 가까운 매출을 장부에 확보했다는 뜻입니다.

국내에서는 이 약정 상대들이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주요 구매자라는 점을 함께 볼 만합니다. 사용량과 관계없이 지급되는 인프라 계약이 늘어날수록 그 설비에 들어갈 메모리 수요도 몇 년 앞까지 가늠하기 쉬워집니다. 다만 그 가시성은 앤트로픽의 매출이 계속 늘어난다는 전제 위에 있고, 신고서가 밝힌 고객 집중과 짧은 계약 기간은 그 전제가 흔들릴 수 있는 지점을 보여 줍니다.

글 오레놀 대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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