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2026.08.23
엔비디아, 풀사이드 인수 대신 60억 달러 라이선스
엔비디아가 인공지능 코딩 스타트업 풀사이드의 모델 개발 인프라를 쓰는 대가로 60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회사를 인수하는 대신 비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개발 인력 109명에게 채용을 제안하는 형식입니다.
거래 조건은 8월 21일 풀사이드가 투자자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엔비디아는 풀사이드의 모델 팩토리를 쓰는 값으로 60억 달러를 내고, 프리머니 120억 달러 기준으로 10억 달러를 따로 출자합니다. 60억 달러는 2027년 말까지 풀사이드의 기존 투자자들에게 배분될 예정이며, 라이선스에는 독점 조항이 없습니다.
모델 팩토리는 풀사이드가 자사 코딩 모델 라구나를 만드는 데 쓴 개발 인프라입니다. 라구나는 공개 가중치 모델이고, 엔비디아 서버 칩으로 훈련됐습니다. 계약에는 라구나 개발에 참여한 직원 109명에 대한 채용 제안이 붙었습니다. 공동창업자 세 사람은 회사에 남고, 풀사이드는 독립 회사로 계속 운영됩니다. 엔비디아가 인수 대신 이런 형식을 택한 것은 그록과 엔파브리카에 이어 세 번째로, 세 건을 합치면 270억 달러대 규모입니다.
거래가 알려진 뒤 업계에서는 기업결합 심사를 피하기 위해 인수를 라이선스 형식으로 구성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함께 놓고 볼 조건은 라이선스가 비독점이라는 점입니다. 풀사이드는 같은 인프라를 다른 곳에 다시 판매할 수 있고, 자산의 소유권도 그대로 유지합니다.
모델 회사가 가진 두 층의 자산
모델 회사의 자산은 크게 두 층으로 나뉩니다. 아래층은 훈련이 끝난 가중치로, 통상 몇 달이 지나면 다음 세대 모델에 밀립니다. 위층은 그 가중치를 만들어 내는 설비입니다. 데이터를 고르고 정제하는 절차, 훈련 레시피, 평가 체계, 수천 장 규모 클러스터에서 며칠씩 이어지는 훈련이 중간에 멈추지 않도록 하는 공학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감가상각이 몇 달 단위로 진행되는 가중치와 다음 세대를 계속 만들어 내는 설비는 값이 매겨지는 방식이 다릅니다. 이번 계약이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 가운데 위층입니다.
설비에서 실제로 옮겨지는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은 문서로 남지 않습니다. 코드는 복사하면 되지만, 어떤 설정이 결과를 바꾸고 어떤 것이 바꾸지 않는지, 훈련이 흔들릴 때 무엇부터 의심해야 하는지 같은 판단은 대개 기록되지 않은 채 담당자에게 남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계약서상 값이 라이선스에 매겨졌더라도 실제 이전은 109명의 이동을 통해 이뤄지는 부분이 큽니다.
비독점 조건은 이 구조와 맞물려 있습니다. 파는 쪽은 형식상 자산을 계속 보유하고, 사는 쪽은 그 자산을 쓸 권리와 개발 인력을 함께 확보합니다.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기 때문에 소유권 이전을 심사하는 제도의 대상에서는 벗어납니다. 회계 처리도 달라집니다. 라이선스료는 무형자산으로 잡아 상각하지만, 인수는 영업권 인식과 연결 재무제표 작성, 사전 신고 의무를 함께 부릅니다. 60억 달러의 수령 주체가 회사가 아닌 기존 투자자라는 조건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지분을 팔지 않고도 투자자가 자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계약의 매수자가 칩 회사라는 점도 구조에 반영돼 있습니다. 엔비디아 제품의 값은 그 위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 수요를 얼마나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정해집니다. 자사 실리콘에 맞춰 조율된 모델 개발 설비는 그 자체로 칩 수요로 이어집니다. 라구나가 공개 가중치 모델이라는 점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모델 판매로 수익을 낼 필요가 없고, 이 계열의 훈련과 추론이 자사 칩 위에서 기본값으로 자리 잡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1956년 AT&T 특허 개방과 다른 점
지배적 사업자가 소유권 이전 없이 라이선스를 통로로 삼은 사례로는 1956년 AT&T의 특허 개방이 있습니다. AT&T는 반독점 합의판결에 따라 보유 특허를 사실상 무상으로 개방해야 했고, 그 목록에 트랜지스터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후 반도체 산업은 그 개방 위에서 형성됐습니다.
두 사례의 조건은 여러 대목에서 갈립니다. 1956년의 라이선스는 규제 당국이 강제한 것이었던 반면, 이번 형식은 매수자가 직접 선택했습니다. 특허는 공개된 문서이고 청구항으로 범위가 정해지지만, 모델 개발 설비에는 그런 경계가 없습니다. 무엇이 얼마나 넘어갔는지 사후에 확인하기 어려운 자산이라면 되돌리는 구제 수단도 설계하기 어렵습니다. 반대 방향의 근거도 있습니다. 풀사이드가 자산을 계속 보유하는 이상 시장에서 공급자가 하나 줄어든 것은 아니며, 회사도 독립적으로 남습니다. 다만 거래 조건이 투자자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알려진 만큼, 계약의 세부 내용 가운데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반복되는 계약 형식
비슷한 구조는 다른 대형 기업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최근 몇 해 사이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이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두고 쓴 방식도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지분을 전부 사들이는 대신 기술 사용권과 핵심 인력을 확보하고, 회사는 형식상 독립된 상태로 남겨 두는 방식입니다.
이번 거래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60억 달러라는 금액 자체보다 그것이 프리머니 120억 달러의 절반에 해당한다는 점입니다. 빌려 갈 수 있는 부분이 회사 전체 값의 절반 수준이라면, 라이선스가 나간 뒤 남는 회사의 값은 그 뺄셈으로 정해집니다. 창업자들이 남은 회사의 방향을 아직 밝히지 않아 그 결과는 지금으로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공개 가중치 모델이 하드웨어 회사의 판촉 수단으로 자리 잡는 흐름도 함께 볼 대목입니다. 모델 사이의 성능 차이가 좁혀질수록 그 모델이 어느 칩 위에서 만들어지고 돌아가는지가 수익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기업결합 심사가 소유권 이전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 한 이런 형식의 계약은 앞으로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