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2026.09.23
AI 에이전트 3만 7천 개로 꾸린 가상 바이오텍
스탠퍼드대 제임스 저우 교수 연구팀이 AI 에이전트 3만 7,000여 개로 신약 개발 회사를 본떠 만든 '가상 바이오텍'을 9월 17일 사이언스에 발표했습니다. 에이전트들은 임상시험 5만 5,984건의 결과를 정리했고, 특정 세포 유형에서만 켜지는 유전자를 표적으로 삼은 약이 시판 단계까지 갈 가능성이 48% 높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지난 자료·원공개 02/23 바이오아카이브, 사이언스 게재 09/17)
회사처럼 조직된 에이전트
연구를 이끈 것은 스탠퍼드대 의과대학 생의학데이터과학과의 제임스 저우 교수(교신저자)와 대학원생 해리슨 장(제1저자)입니다. 스탠퍼드 의대 발표에 따르면 가상 바이오텍은 실제 신약 개발 회사의 조직도를 그대로 따릅니다. 맨 위에 최고과학책임자 역할의 에이전트가 있고, 그 아래에 표적 발굴, 안전성 평가, 치료 방식 선택, 임상 개발을 맡은 부서가 있습니다. 바이오아카이브 원고는 통계유전학, 기능유전체학, 화학정보학, 질병생물학, 임상 데이터를 각각 맡은 과학자 에이전트들이 이 부서를 채운다고 설명합니다.
가장 큰 작업은 임상시험 기록 정리였습니다. 임상시험 담당 에이전트 3만 7,000여 개가 시험 5만 5,984건의 결과를 같은 형식의 표로 옮겼고, 약 5만 건을 정리하는 데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하면 몇 년이 걸리는 일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습니다. 에이전트를 어떤 언어 모델로 돌렸는지,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이 기사가 참고한 자료에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특정 세포에서만 켜지는 유전자
정리된 기록에서 나온 결과는 약이 결국 무엇을 건드리느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몸의 세포는 같은 유전체를 갖고 있지만 세포 종류마다 켜지는 유전자가 다릅니다. 연구팀은 세포를 하나씩 나눠 읽는 단일세포 데이터를 이용해, 표적 유전자가 특정 세포 유형에서만 뚜렷하게 켜지는 약과 여러 세포에서 두루 켜지는 약의 임상 성적을 비교했습니다.
앞의 약은 1상에서 2상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40%, 시판 단계까지 갈 가능성이 48% 높았고 이상반응은 32% 적었습니다. 표적이 한 세포 유형에 모여 있으면 약이 엉뚱한 조직을 건드릴 일이 줄고, 그만큼 부작용이 적어 임상 단계를 통과하기 쉬워진다는 해석입니다. 저우 교수는 에이전트들이 발견한 이 단일세포 특징을 더 나은 약을 만드는 데 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폐암 항체약물접합체 사례
연구팀은 가상 바이오텍이 실제 치료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지도 시험했습니다. 에이전트들은 B7-H3라는 단백질이 결합조직을 이루는 섬유아세포에서 나타난다는 점을 짚고, 이를 표적으로 하는 항체약물접합체를 제안했습니다. 항체약물접합체는 표적을 찾아가는 항체에 독성 약물을 매달아, 약물을 암 주변에만 전달하도록 만든 약입니다.

스탠퍼드 의대는 2025년 8월 한 제약사가 같은 방식의 B7-H3 항체약물접합체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국의 혁신치료제 지정을 받았다고 소개했고, 저우 교수는 이를 제3자 검증이라고 불렀습니다. 네이처도 뉴스 기사로 이 사례를 다뤘습니다.
분석의 한계
임상시험 분석은 이미 끝난 시험을 돌아본 것이어서, 세포 유형 특이성과 성공 사이에 나타난 관계가 인과인지는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질환 분야나 약의 종류처럼 성공률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인이 결과에 섞여 있을 수 있고, 에이전트가 공개 기록에서 옮겨 적은 수치의 정확도도 별도 검증이 필요합니다. B7-H3 사례도 에이전트의 제안이 제약사의 판단과 일치했다는 데까지이며, 에이전트가 제안한 약을 실험실에서 직접 시험한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저우 교수 자신도 AI가 영향을 미치려면 사람과 실험, 검증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관점
이번 연구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AI가 수만 건의 실패와 성공 기록을 읽어 어떤 표적이 임상을 통과하는지를 가려낸 부분입니다. 신약 개발에서 돈과 시간이 가장 많이 드는 곳은 임상 단계이고, 표적을 고를 때 실패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도구는 그 비용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노화 약물 개발에는 이 결과가 따로 물음을 던집니다. 노화를 겨냥하는 약은 성장호르몬이나 영양 감지 경로처럼 몸 전체에서 작동하는 표적을 건드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분석대로라면 이런 표적은 임상에서 불리한 쪽에 서게 됩니다. 노화 연구가 세포 유형별 표적을 찾는 방향으로 옮겨 갈지, 몸 전체의 경로를 건드리는 약이 예외가 될지는 다음 연구에서 확인할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