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2026.08.29
진단 없는 표적치료제
췌장암에 처음으로 표적치료제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약은 표적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씁니다.
미국 식품의약국이 26일 레볼루션 메디신스의 다락소나십을 전이성 췌장 선암 치료제로 승인했습니다. 제품명은 라손크이고 하루 한 번 먹는 300밀리그램 알약입니다. 대상은 전신 치료를 한 번 이상 받았거나 여러 약을 함께 쓰는 치료를 받기 어려운 성인입니다. 종양에서 RAS 변이가 확인됐는지와 무관하게 쓸 수 있고 동반진단 검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근거는 3상 RASolute 302입니다. 이전에 치료받은 전이성 췌장 선암 환자 500명을 다락소나십과 의사가 고른 세포독성 항암화학요법으로 나눠 비교했습니다. 전체 등록 환자 기준으로 전체 생존 중앙값은 13.2개월 대 6.7개월, 사망 위험 비는 0.40이었습니다. 무진행 생존 중앙값은 7.2개월 대 3.6개월, 위험 비는 0.49입니다. 두 값 모두 p는 0.0001보다 작습니다. 전반적 건강 상태가 나빠지기까지 걸린 기간의 중앙값은 5.7개월 대 2.6개월, 통증이 악화되기까지는 9.2개월 대 3.8개월이었습니다.
이 승인이 왜 크게 다뤄지는지는 배경 숫자에 있습니다. 미국에서 해마다 약 5만 5,000명이 췌장 선암 진단을 받고 5만 명 넘게 사망합니다. 약 80%는 이미 퍼진 뒤에 발견되고, 전이성 환자의 5년 상대 생존율은 약 3%입니다.
이 승인을 두고 나오는 설명은 대체로 하나입니다. 40여 년 동안 약을 붙일 수 없던 표적이 뚫렸다는 것입니다. 절반은 맞습니다. 다만 이 설명으로는 표적치료제인데 왜 표적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쓰는지가 풀리지 않습니다. 표적치료의 원칙은 그 변이를 가진 환자를 검사로 골라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약은 그 골라내기를 하지 않습니다.
붙을 자리가 없어서 만들었습니다
RAS는 세포에게 자라라는 신호를 다음 단계로 넘겨주는 스위치입니다. 췌장암에서는 이 스위치가 켜진 채로 고장 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약을 만들지 못한 이유는 이 단백질의 표면이 매끄럽다는 데 있었습니다. 작은 분자가 파고들 만한 홈이 없습니다.
이 약은 RAS에 직접 달려들지 않습니다. 먼저 세포 안에 원래 있던 사이클로필린 A라는 단백질에 붙습니다. 둘이 합쳐지면 원래 어느 쪽에도 없던 새 표면이 생기고, 그 표면이 켜져 있는 상태의 RAS를 붙잡습니다. 세 개가 하나로 묶인 덩어리가 만들어지고, 붙잡힌 RAS는 RAF나 PI3K 같은 다음 단백질에 신호를 넘기지 못합니다. 약이 붙을 자리를 세포 안에서 새로 만들어 내는 셈입니다.
동반진단이 없는 이유도 여기서 나옵니다. 이 방식은 변이된 RAS만 골라 잡지 않고 정상적인 RAS까지 함께 잡습니다. 그래서 변이가 있는지 없는지가 쓸지 말지를 가르지 않습니다.
값도 같은 자리에서 나옵니다
정상 RAS까지 누른다는 것은 정상 세포도 영향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세포가 자주 갈리는 피부와 점막이 먼저 표를 냅니다. 시험에서 피부와 연조직 독성은 환자의 86%에서 나타났고 그중 10%가 3등급이었습니다. 20% 이상에서 보고된 이상반응은 발진, 설사, 구내염, 메스꺼움, 구토, 복통, 부종, 식욕 저하, 출혈입니다. 경고 항목에는 위장관 천공과 간질성 폐질환도 들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삶의 질 지표가 비교군보다 낫게 유지됐습니다. 다만 비교 대상이 정맥으로 맞는 세포독성 항암제라는 점을 함께 봐야 합니다. 견딜 만한 약이 아니라 덜 힘든 약입니다.

2001년의 글리벡
전례가 있습니다. 2001년 이마티닙이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로 승인되면서 표적치료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암을 굴리는 유전자 스위치 하나를 직접 겨눠 예후를 바꿔 놓았다는 점에서 모양이 같습니다.
다른 점이 더 중요합니다. 글리벡이 겨눈 것은 특정 융합 유전자를 가진 좁은 환자군이었고, 그 유전자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검사가 처방의 전제였습니다. 표적이 좁고 깊었습니다. 만성기 환자의 생존은 해 단위가 아니라 십 년 단위로 바뀌었습니다. 이번 것은 반대입니다. 표적을 넓게 잡아 검사 없이 쓰고, 늘어난 시간은 여섯 달 남짓입니다. 표적이 넓을수록 더 많은 환자에게 닿지만 한 사람에게 주는 폭은 얕아집니다.
반대 근거도 분명합니다. 13.2개월은 2차 치료 이후 기준이고 전이성 환자의 5년 생존율은 여전히 3% 근처입니다. 미국 밖에서는 아직 어느 규제 기관도 승인하지 않았고 유럽은 단계적 심사 중입니다. 값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신청은 식품의약국장의 국가 우선 바우처 시범 프로그램에 선정돼 심사가 빨랐습니다. 빨리 승인한다는 것은 그만큼 승인 뒤에 쌓일 실사용 자료의 비중이 커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남는 것
첫째, 약을 찾는 방법 자체가 바뀝니다. 지금까지 신약 개발은 표적 단백질에서 약이 들어갈 홈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홈이 없으면 표적이 아니었습니다. 세포 안의 다른 단백질을 끌어와 붙을 자리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 자리를 잡으면 표적의 목록 자체가 넓어집니다.
둘째, 승인 속도가 정책 도구가 됩니다. 이 자리에서 노화에는 아직 병 이름이 없고 이름이 없으면 승인을 받을 문도 없다는 이야기를 살펴봤습니다. 국가 우선 바우처나 프로젝트 오르비스 같은 장치는 그 문을 어디에 몇 개 만들고 얼마나 빨리 열지를 규제 기관이 고르는 일입니다.
셋째, 검사 없이 쓴다는 것은 대상 환자가 넓다는 뜻이고, 그것은 값을 정하는 방식도 바꿉니다. 좁은 표적약은 적은 환자에게 비싸게 팔렸습니다. 넓은 표적약은 다른 셈법 위에 놓입니다. 이번 약의 값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승인 문서에는 검사 없이 쓰라고 적혀 있습니다. 40여 년 동안 약이 붙지 못한 이유가 그 한 줄 안에 함께 들어 있습니다.